계룡산 아래, 한 식당에선 매일 새벽 특별한 후계 수업이 시작된다. 23년째 묵을 직접 쑤어서 팔고 있는 아버지 허재성(66) 씨와 아버지의 묵을 물려받겠다고 나선 장남 혁진(36) 씨. 아들이 묵을 배운 지도 어느덧 1년째지만, 아버지 재성 씨는 “아직 멀었다”라며 매일 혹독한 평가를 내린다.
재성 씨에게 도토리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IMF 때 사업 실패 후, 고향 공주의 산골로 들어왔던 재성 씨 가족. 막막했던 그 시절, ‘도토리묵’은 가족을 가난에서 구해 준 ‘삶의 버팀목’이었다. 새벽마다 불 앞에 서서 묵을 쑤며 다섯 아들을 키웠고, 그렇게 한 그릇 한 그릇 쌓아 올린 세월은 아버지의 자부심이 되었다. 다섯 아들 중 누군가 이 묵을 이어받길 바랐지만, 개성 넘치는 오 형제는 주얼리 세공사, 영화감독, 영화배우, 래퍼, 복싱 코치로 자신의 길을 찾아갔다. 그런데, 재성 씨가 지붕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친 어느 날. ‘이러다 아버지의 묵이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안타까웠다는 장남 혁진 씨. 반지와 목걸이를 만들던 아들은 그렇게 아버지의 묵을 배우기 시작했다.
묵을 배우기 위해 매주 서울과 공주를 오가는 혁진 씨. 결혼 1년 차 신혼부부라 서로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못내 아쉽지만, 아내 설희(31) 씨는 남편의 선택을 묵묵히 응원해 준다. 어릴 때부터 먹고 자란 아버지의 묵을 배우며 더 나아가 자신만의 묵을 만들고 싶다는 혁진 씨. 배워야 할 것도, 챙겨야 할 것도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지만, 아버지가 지켜온 맛과 시간을 이어가겠다는 마음만은 흔들림이 없다.
오랜 시간 끓이고 저어야 비로소 단단해지는 묵처럼, 숱한 실패와 눈물 속에서 서로를 붙들며 지켜온 가족. 묵 한 그릇에 녹아있는 어느 가족의 뜨겁고 찰진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어스름한 새벽, 솥 앞에 나란히 선 두 남자가 있다. 23년간 묵을 쑤어온 아버지 허재성(66) 씨와 그의 수제자이자 큰아들 혁진(36) 씨. 도토리 가루를 물에 푸는 것부터 불 조절, 젓는 법까지 혁진 씨는 아버지가 하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곁눈질하기 바쁘다.
서울에서 8년 동안 주얼리 세공사로 일했던 혁진 씨. 자신만의 브랜드를 꾸리며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묵을 쑤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3년 전, 아버지가 지붕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치면서부터였다. ‘이제 묵 집을 못할 수도 있겠다’라는 아버지의 말에, 덜컥 겁이 났던 혁진 씨. 어려웠던 시절, 일곱 식구를 다시 살게 해준 묵. 그 묵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 형제의 장남인 혁진 씨가 가업을 잇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하던 일을 정리하고 매주 서울과 공주를 오가며 묵을 배운 지도 어느덧 1년. 잠도 못 자고 새벽부터 고생하는 아들이 안쓰러운 어머니 박창미(57) 씨는 이제 그만 와도 되지 않겠냐고 말하지만, ‘묵 도사’로 통하는 아버지 눈엔 아직도 아들이 부족하기만 하다.
혁진 씨가 혼자 묵을 쑤는 동안, 아들의 손짓 하나하나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재성 씨. 혁진 씨는 언제쯤 아버지에게 합격점을 받을 수 있을까?
아침 해가 뜨기도 전, 살금살금 주방으로 나오는 재성 씨. 창미 씨가 잠든 사이 묵을 쑤며 아침을 연다.
아내만큼은 푹 자게 하고 싶어서, 주방 기기 하나 만지는 것도 조심스러운데…. 그렇게 한 솥 가득 묵을 쑤고 나면 그제야 창미 씨가 일어나고 40년째 깨 볶는 부부의 하루가 시작된다.
아홉 살 어린 신부와 결혼해 세상 물정 모르는 아내를 평생 공주처럼 모시고 싶었다는 재성 씨. 하지만, IMF로 사업에 실패하면서 그 다짐은 무너졌다. 다섯 아들을 데리고 공주의 산골로 들어온 부부는 365일 묵을 쑤고 또 쑤며 다시 삶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고이 간직하던 결혼반지를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고 먹고 사는 일에 치여 다섯 아들 졸업식 한번 못 가봤다는 창미 씨. 지금은 누구보다 화목하고 넉넉해 보이는 부부지만, 사실 창미 씨는 예쁜 그릇 하나 마음껏 사본 적이 없다. 아내를 고생시킨 게 미안해서 지금껏 묵 젓는 일은 한 번도 맡기지 않았다는 재성 씨. 23년간 매일 혼자 묵을 쑤어온 탓에 온몸에 성한 곳이 없어, 통증 때문에 잠을 설칠 때도 많은데….
점점 통증이 심해지던 어느 날, 결국 병원을 찾은 부부. 그런데, 의사의 말을 듣던 두 사람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오랜만에 오 형제가 모두 모인 날, 도란도란 음식을 나눠 먹으며 회포를 푼다. 영화배우, 영화감독, 래퍼, 복싱 코치 등 직업도 제각각인 오 형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탓에 한 번 모이기도 쉽지 않지만, 그런 오 형제가 모이면 빠지지 않는 단골 화제는 여전히 ‘묵’이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놀러 가는 대신 가게로 달려와 부모님의 일을 도왔던 다섯 아들. 지낼 방도 없어 식당 한 편에 옹기종기 모여 자던 오 형제가 번듯하게 자랄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묵 덕분이었다. 장남 혁진 씨의 목표는 아버지가 평생 지켜온 묵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행사장을 돌며 묵밥을 팔고, 아버지의 묵을 소개하고 있다. 공주에서 묵 배우랴, 행사 다니랴 정신없이 바쁜 요즘, 스승님께 누가 되진 않을까 하는 부담과 사람들에게 묵을 알릴 수 있다는 설렘이 뒤섞인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 혁진 씨에게 ‘스승’이자 ‘아버지’로서 필요한 주방 기기들을 하나씩 챙겨주는 재성 씨.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연장인 주걱을 건네며, 묵묵한 응원을 전한다.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장남의 묵 수련기! 반평생 가족을 먹여 살린 아버지의 묵은, 아들의 손을 거쳐 또 어떤 시간을 이어가게 될까. 그 여정을 따라가 본다.